수를 센다는 것. #2


(codesafer) #1

아기돼지 소풍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세었느냐 빠뜨렸느냐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프로그래밍 하면서 여러번 경험하게 될 실수이기도 하죠.
이 실수로부터 깨닫게 되는게 많은데,

수는 0부터 출발할 수도 1부터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온도를 말할때의 화씨나 섭씨가 서로 다른 시작과 간격을 갖듯 말이죠.
즉, 수를 셈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절대적이지 않은, 상대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상대수들은 또한 고유의 맛을 품게 되죠.

음악 연주에서 조성을 이동하는 ‘전조’ 가 있고, 절대음감과 상대음감이 있지만,
우리가 조옮김 된 곡이 원래의 곡과 다른 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것 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명리학에서 고전적으로 말하는 길한 수와 흉한 수가 의미가 있을까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건 상대거리상의 흉함이라는걸 잊어선 안됩니다.

즉, 우리가 “다시 시작해” “새롭게 시작하자” 라고 느끼는, 삶의 전환이나
열심히 도전하던 스테이지에서 실패해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게임의 과정처럼
0 을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에 거북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1. 보다 익숙해진 방법으로,
  2. 확신을 갖고,

문제들을 풀어 갈 수 있는 것이죠.
확신이란 문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은겁니다.

내가 아기돼지 소풍선생님인데 ‘아기돼지들을 순서대로 빠짐없이 세었다.’
리는 확신이 없이는 수를 세는 것 조차 불가능합니다.
언제나 모든걸 버리고 ( 때려치우고 ) 새롭게 시작하기만 하는 것 또한
발전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 에 가까운 모습일테니까요.

우리가 섭씨와 화씨의 기준인 0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여러 상태들로 부터 공감하고 설득당했기 때문인 것이죠.
즉, 우선 나를 납득하게 만들 수 있어야,
올바른 0을 설정할 수 있게 되고,
수를 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