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dicate - 영생인가 무생인가

순간이동의 의미에 관하여

이영도 작가의 단편입니다.

소설에서 “수상비행기는 배인가 비행기인가?” 라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백신인가 바이러스인가?” 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수식어를 걷어내고, 주어와 목적어, 보어를 걷어내면,
본질적으로 술어 하나만 남습니다.
(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해.” )

바이러스와 행위가 별다를것 없는 프로그램에
백신이란 이름을 붙여 의미부여함은
무슨 이득을 주는 것일까…

아마 캡슐화의 이득이겠죠.
동시에 블랙박스의 단점도 얻게 되겠죠.

소설에서 순간이동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묻습니다.

A : 순간이동 장치는 영생 장치군요.
B :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는데.
A : 얼마나?
B : 영원히.

이 대화 몇 마디에 유물론, 인식론, 불가지론이 함께 담겨있지요.

자아라는 것은 그저 물리적 자극에 반응할 뿐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존재한 적이 있었는가?

“우리가 서로의 증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인식하고,
그 순환논리 속에서
우리는 또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움직임’에 의미부여를 했을 뿐인가.

그것은 공허한가? 아니면 이득이 되는가?

생각을 어디서 멈출 것인가.
( 어떤 편견을 가질 것인가 )

쬐금 현학적이군여.
무엇하나 결론내기 힘든 질문이고 사변이지만,
영감을 주는 주제인것 같습니다.

이 주제와 연관지어 분할 통치의 이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이쯤되니 머리가 넘 아파서 리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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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의 반댓말이 완생일껄요?

행위에 집중하면 되는걸 굳이 길흉으로 의미부여를 하니~ 이런 뜻이었네요.

그래서 존재론에 관해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을 이야기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명해야 할 수 밖에요.

다만 타에게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물론 별개의 문제죠.

그러한 ‘편견’ 에 멈춤이 합리적인 구석도 많습니다.

음 누구는 영생/무생으로 가르기도 하던데,
여기서 미생은 ‘존재한 적이 없음’ 이란 의미로 썼읍니다.
근데 미생이 또한 언젠가는 태어남을 암시하니…
좀 뉘앙스가 안맞는 구석이 있네요 ㅋㅋ

바둑에서 미생은 ‘지금 당장 살아도 산게 아니야’ 느낌이니깐요 : )

사실 물리적으로 보면 수륙양용인 하버크래프트 같은류들 보다

사람이 걷는다는게 더 재밌습니다.

연속해보이는 운동인데도 정지마찰력이 작용하니까요.

디지털인가유? 허허

삶의 의미를 찾는 고민들은,

많이 살아보고 해도 늦지 않습니다.

시놉 열심히 읽고 영화 보면 재미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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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변화’ 의 의미로 볼 때,

바둑에서의 미생은 두집이 확보되지 않아 언제든 잡혀버릴 수 있는 무리.

완생은 확보가 된 무리인데, 어떤 의미로 보면 완생쪽이 죽은 것이지요.

변화가 적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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